한국 원자력 잠수함, 30년 숙원인가 허영 프로젝트인가” — 지금 논쟁의 핵심 정리
‘핵잠수함을 2030년대 중반에 진수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이번엔 “그게 정말 필요한 사업이냐”는 반론이 터졌다. 2026년 6월 말 뉴시스가 보도한 전문가 비판 기사 제목은 자극적이다. ‘허영 프로젝트‘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원자력 잠수함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다시 불붙은 지금, 과연 무엇이 핵심 쟁점인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리해봤다.
‘장보고 N’ — 30년 묵은 꿈이 드디어 실행 단계로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갖고 싶다는 욕구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362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추진됐다가 예산 부족으로 이지스함에 밀려 중단됐고, 그 뒤로도 수십 년간 안보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되살아났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25년 10월 경주 한미정상회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감을 표했다. 이후 2026년 5월 26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진해 해군잠수함사령부에서 ‘대한민국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공식 사업명은 ‘장보고 N’. 신라의 해상왕 이름을 그대로 이었다. 목표는 1번함을 2030년대 중반 진수, 2030년대 후반 전력화다.
왜 지금 전문가들이 “필요하냐”고 묻는가
바로 이 발표 직후부터 반론이 쏟아졌다. 미국의 방산 전문가 그로스만-트라윅은 핵심을 찔렀다. 한국 방산이 지금까지 세계 시장에서 통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빠른 납기, 높은 성능” 덕분이었는데, 핵잠수함은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전략 자산이라 산업적 투자 대비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 직격탄은 이것이다. 고급 기술인력과 연구개발 자원이 핵잠수함에 장기간 집중되면, 오히려 K-방산을 이끌어온 다른 무기체계 개발과 수출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핵잠수함 한 척 대신 국산 3,000톤급 디젤잠수함 5척 이상을 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핵잠수함 1척 건조 비용이 약 2조 5,000억 원으로 추산되는데, 같은 돈이면 우리 연근해를 더 촘촘히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도 ‘필요하다’는 쪽의 논거는 강하다
반론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찬성론의 근거가 더 구체적이고 절박하다.
- 북한 SLBM 위협: 북한은 이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2차 발사에 사실상 성공했다. 수중에서 치는 핵타격 능력에 대응하려면, 잠항 기간이 무제한인 핵추진잠수함만이 ‘수중 킬체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 전략적 억제력: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핵잠을 보유하지 못하면 국내 핵무장 여론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핵잠이 오히려 핵 확산을 억제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 비용 논란의 허실: ‘천문학적 비용’이라는 비판도 따져봐야 한다. 국내 최고 잠수함 전문가로 꼽히는 문근식 한양대 교수는 한국형 핵잠수함의 척당 건조비를 약 2조 5,000억 원으로 추산하며, 이는 영국 아스튜트급과 미국 버지니아급 사이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비싸다’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기술력은 이미 검증: 한국은 독일 기술 도입 이후 독자 건조한 장보고-Ⅱ급 9척을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잠수함 강국이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대형 드라이독 등 핵잠수함 플랫폼 제작에 필요한 인프라도 갖췄다.
진짜 관건은 ‘핵연료 확보’다
찬반 논쟁을 넘어 실제로 사업을 가로막는 벽은 따로 있다. 바로 핵연료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만들 수 있게 해달라”가 아니라 “연료를 공급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고농축우라늄(HEU)을 농축하려면 미국의 동의가 필수인데, 미국 내 비확산 전문가 집단은 “한국에 예외를 허용하면 다른 나라도 같은 요구를 할 것”이라며 선례 효과를 우려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프랑스와의 협력이 부상했다. 프랑스 바라쿠다급 잠수함은 저농축우라늄(LEU) 원자로를 쓰기 때문에, 핵비확산 측면에서 정치적·법적 장벽이 HEU보다 낮다. 세종연구소는 2026년 한-프랑스 핵잠수함 협력 양해각서(MOU) 체결을 제안하는 로드맵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중국은 “한국이 신중히 처리하길 희망한다”는 외교적 표현으로 불편함을 드러냈고, 일본은 “우리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동북아 군비 경쟁의 불씨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결국 이 논쟁이 우리에게 묻는 것
원자력 잠수함 논쟁은 단순히 ‘무기를 사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얼마나 의존할 것인지, 북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방산의 목적이 수출 이익인지 국가 전략자산 구축인지 — 이 모든 질문이 한꺼번에 얽혀 있다. ‘허영 프로젝트’라는 비판은 경청할 가치가 있지만, 30년간 실현 못 했던 사업이 드디어 기본계획까지 나온 지금, 되돌아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 의회가 핵연료 협정에 어떤 조건을 달 것이냐다. 2026년 하반기, 그 협상의 향방을 주시해야 한다.
참고 자료
- 전문가들, 韓 핵잠 필요성에 의문…허영 프로젝트냐 — 뉴시스
- 한국, 핵잠수함 팔지도 못하면서…美 전문가 “만들지 마!” 지적 — 나우뉴스
- 정부, ‘핵잠 건조 기본계획’ 발표 … “핵잠 1번함 2030년대 중반 진수” — 뉴데일리
- “美 번복 못 하게 한국형 핵잠수함 건조 착수 서둘러야” — 서울경제
- 핵추진 잠수함 추진 시 3대 외교안보 쟁점 — 세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