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기지 하나 날리면 러시아 드론이 멈춘다? 지금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UAV 제어 전쟁의 실체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 유리 이나트가 지난 6월 30일 TV에 나와 꽤 충격적인 말을 했다. “중계소 하나를 제거했더니, 그 지역에서 러시아 무인기의 실시간 제어 능력이 효과적으로 약화됐다.” 즉, 드론 자체는 멀쩡한데 통신을 잇는 중계기지 하나가 사라지자 러시아 UAV가 눈을 잃은 것처럼 됐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중계기지란 무엇이고, 그걸 잃으면 드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중계기지가 없으면 드론은 그냥 날아가다 박힌다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 이나트는 중계소를 통해 장거리로 신호를 전송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종사와 무인 항공기 간의 안정적인 연결을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러시아 조종사가 드론에 “지금 왼쪽으로 틀어, 목표 바꿔”라고 명령을 내리는 회선이 바로 중계소를 통해 이어진다. 이 줄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무인 항공기가 미리 프로그래밍된 좌표를 따라서만 비행하는 경우, 궤적을 변경하거나 목표를 조정할 수 없다. 출발 전에 입력된 경로만 따라 날아가다가, 상황이 바뀌어도 그냥 직진하거나 엉뚱한 곳에 처박히는 셈이다. 마치 내비게이션이 꺼진 채 과거 경로만 기억하는 차가 달리는 것과 같다.
러시아 연방의 샤헤드형 공격용 무인 항공기는 장거리 공격 시 항법을 위해 무선 통신망과 지상 기반 시설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을 따라 설치된 중계소를 통해 조종사와 무인 항공기(UAV) 간 장거리 신호 전송이 가능하다. 젤렌스키가 벨라루스를 향해 “일주일 안에 통신 장비를 해체하지 않으면 직접 처리하겠다”고 강하게 경고한 것도 이 맥락이다.
드론끼리 중계기지 역할을 하는 ‘스웜 네트워크’
그렇다면 러시아는 아무 대책이 없을까?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은 무인 항공기(UAV) 자체가 서로 중계 기지 역할을 하여 운용자가 비행 경로를 조정하고 목표를 실시간으로 변경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즉 지상 중계소 없이도, 공중에 떠 있는 드론 여러 대가 서로 신호를 릴레이하는 ‘공중 메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지상 기지가 파괴돼도 드론 간 연결만 살아있으면 제어가 유지된다.
러시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러시아 엔지니어들은 15~24km 고도에서 운용 가능한 성층권 무인항공기 ‘아르구스(Argus)’의 시험 비행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 고도는 대부분의 휴대용 대공 방어 시스템으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적들은 아르구스를 격추하려면 대공 미사일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지상 중계소를 하늘 높이 올려버리겠다는 발상이다.
중계기지를 없애도 살아남는 드론 — AI와 광섬유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 “통신이 끊겨도 죽지 않는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두 가지 방향이다.
첫째, 광섬유 드론.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는 굵기 0.2밀리미터의 가느다란 광섬유 케이블에 연결된 드론이 적군의 은신처까지 다가와 공격 대상을 찾을 때까지 주변을 맴도는 장면이 일상이 됐다. 무선 신호를 쓰지 않으니 전자전으로 교란하거나 재밍할 수가 없다.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광섬유 유도 드론은 최대 10km 이상 길이의 광섬유를 탑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둘째, AI 자율비행 드론. 미국제 호넷 UAV는 광학 거리 측정 방식을 사용하여 모든 러시아 전자전(EW) 시스템을 우회하며, 위성 항법이나 무선 통신 없이도 작동할 수 있다. 이 UAV는 안테나나 통신 장비 없이 비행하며, 오로지 컴퓨터 비전을 통해서만 항로와 목표물을 찾아낸다. 러시아 쪽도 마찬가지다. 샤헤드 드론은 시각항법 AI 기술 도입 등 우크라이나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여 고속·고정밀·재밍 내성을 갖춘 고성능 첨단 무기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3개월마다 바뀌는 드론 전술, 그 끝은 어디인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3개월 정도의 짧은 주기로 드론 전술과 대드론 전술이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강화된 방공망을 돌파하기 위한 기술 역시 진화하고 있다. 중계기지를 제거하면 드론이 멈추던 시대에서, 이제는 중계기지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며 날아가는 자율 드론의 시대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이 흐름은 한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기술 지원을 받아 러시아판 샤헤드인 게란 드론을 북한에서 양산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실전 검증된 드론이 동아시아로 퍼질 수 있다는 점에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다. 중계기지 하나를 끊으면 드론이 멈추는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장에서는 통신도 GPS도 필요 없이 스스로 날아오는 드론이 시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