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 400조 광주 반도체 팹에 “우리와도 논의하라” 입장 낸 이유

삼성전자가 광주에 400조 원을 투입해 대형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공식 선언한 지 불과 사흘 만인 7월 1일, 전국 삼성전자 노동조합 중 최대 조직인 초기업노조가 이례적으로 공식 입장문을 냈다. 요지는 간단하다. “좋은 일이긴 한데, 일하게 될 사람들 얘기도 들어달라.” 이 짧은 한 줄이 지금 삼성전자 내부에서 꽤 복잡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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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위키백과

전국 삼성전자 노동조합, 왜 지금 목소리를 높였나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광주를 신규 반도체 단지 후보지로 계획 중”이라며 40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직접 밝혔다. 정부가 추진하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의 핵심 축이 공식화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노조 입장에서 이 발표는 마냥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기흥·화성·수원·천안 등 수도권~충청권에 몰려 있던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직원들이 언젠가 광주로 전보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DS부문 직원들 입장에서 호남 반도체 공장 투자는 용인·화성·기흥·천안 등 경기 중부부터 충청권에 이르는 근무 가능 지역이 호남까지로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초기업노조 입장문의 핵심 3가지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는 서남권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해 노사정(노조·회사·정부)이 함께 협의하는 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7월 1일에 발표된 이 입장문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조급함 금지: “메가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과제”라며 “조급함보다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긴 호흡으로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의 속도전에 제동을 건 셈이다.
  • 사람이 먼저: “이 모든 것의 근본에는 사람이 있다”며, 조합원이 앞으로 일하게 될 현장의 산업 안전, 주거 환경, 인프라가 충실히 갖춰지고 그에 걸맞는 처우가 뒷받침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노사정 협의체 구성 요구: 노조를 빠뜨린 채 회사와 정부끼리만 밀실에서 결정하지 말고, 노조도 테이블에 앉혀달라는 것이 핵심 요구다.

사실 노조는 처음부터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이번 입장문이 갑작스러운 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공장 추진설이 확산되던 6월 10일, 초기업노조는 사측에 공문을 보내 호남 반도체 공장 추진설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회사의 답변은 “모르는 일”이었다. 노조가 공식 루트로 물어봤는데 회사는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그러다 이재용 회장이 직접 광주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노조도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성과급 갈등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

호남 이슈가 터진 배경에는 아직 식지 않은 노사 갈등이 있다. 올해 5월, 삼성전자 노사는 성과급 지급 체계를 둘러싼 협상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로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고, 노사 양측이 임금 교섭으로 갈등을 빚은 지 다섯 달 만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 합의는 완전한 봉합이 아니었다. 반도체 부문 메모리 사업부는 최대 6억 원 성과급을 받지만, 비반도체 DX부문은 추가 성과급 없이 사실상 위로금 성격의 600만 원 상당의 자사주만 받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DS와 DX 사이의 보상 격차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DS 분리교섭·전삼노 갈등… 노조 지형도 요동치는 중

이번 광주 이슈는 노조 내부의 갈등 구도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재신임이 결정된 후 노동위원회의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활용해 DS 부문의 별도 교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관련 작업을 7월부터 바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분리교섭이 실현되면 반도체(DS) 직원과 스마트폰·가전(DX) 직원의 임금 협상 테이블이 완전히 달라진다. 광주 공장에 파견될 인력은 DS 부문이 중심인 만큼, 분리교섭이 호남 처우 문제에도 직결된다.

한편 DX 직원들이 중심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성과급 합의 과정에서 찬성률이 불과 21.1%에 그치며 사실상 합의에 반기를 든 상태다. 전삼노는 현재 DX 부문 대표이사와의 공식 면담을 재촉구하며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400조 투자, 노조가 걱정하는 진짜 이유

노조가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인 400조 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를 광주에 짓는다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다. 경기·충청권에 뿌리를 두고 살고 있는 수천, 수만 명의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광주로 이동해야 한다면 주거, 자녀 교육, 교통 인프라 등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노조가 “조급함보다 철저한 준비”를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공장 위치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400조 프로젝트가 순항하려면 정부의 인프라 투자와 삼성의 처우 보장, 그리고 노조와의 사전 협의가 삼박자를 맞춰야 한다. 노조가 먼저 “협의의 장”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 삼박자 중 하나가 아직 빠져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