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불러온 유조선 특수, “韓기업이 최대 수혜자”라는 해외 반응의 진짜 이유
2026년 2월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공습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다. 전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이 막히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지만, 한국 조선업계만큼은 오히려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수주 릴레이, 역대 최고 선가 갱신, 3년 6개월치 일감 확보까지—지금 한국 유조선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정리했다.

호르무즈 봉쇄가 불러온 유조선 수요 폭발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바스라 석유터미널에는 개전 이후 단 두 척의 유조선만 입항할 수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내륙 송유관을 통해 얀부항·푸자이라항으로 원유를 우회 수출하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한국 유조선들도 홍해 우회로를 택했고,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호르무즈 봉쇄 이후 열 번째로 홍해를 통과한 한국 선박이 사우디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귀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기존 항로가 막히면 유조선은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운항 거리가 늘어나면 같은 양의 원유를 수송하는 데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해진다. 이것이 바로 전쟁 리스크가 역설적으로 유조선 발주 수요를 끌어올리는 구조다. 대한조선 측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원유 운송 거리가 증가하면서 수에즈막스급 선박 수요 확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직접 밝혔다.
대한조선, 수에즈막스 시장 ‘글로벌 1위’ 등극
이 흐름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업은 대한조선이다. 2026년 1분기에만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12척을 수주해 이 선종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3월 30일에는 오세아니아 소재 선사와 약 2,760억원 규모(2척) 계약을 체결했는데, 대한조선 창사 이래 이 선종으로는 역대 최고 선가를 기록한 계약이었다. 9월에는 전 세계에서 발주된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10척 중 무려 8척을 대한조선이 쓸어담기도 했다.
1월 노르딕 아메리칸 탱커스(NAT)와의 첫 계약(2척·2,520억원)을 시작으로, 2월 오세아니아 선사 2척 추가, 유럽 선사 2척, 3월 10척 누적 돌파까지—3개월 만에 연간 수주 목표의 82%를 달성했다. 현재 전체 수주잔량은 34척 이상으로, 약 3년 6개월치 건조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진기봉 대한조선 영업실장은 “글로벌 선사들 사이에서 ‘수에즈막스는 대한조선이 가장 잘 만든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 전체가 ’10조 클럽’ 진입 목전
대한조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6년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영업이익 합산 컨센서스는 10조원으로, 역대 최고였던 2010년(5조 3,000억원)을 두 배 가까이 뛰어넘는 수치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6년 수주 목표를 268억달러로 설정했는데, 이는 2025년 실제 수주(228억달러) 대비 17.5% 높은 수준이다. NH투자증권은 국내 조선사 합산 신규 수주가 388억달러(약 56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 한국 조선은 글로벌 발주 27% 급감 속에서도 수주점유율을 14%에서 21%로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고부가 선종 중심의 선별 수주와 도크 운영 효율화를 배경으로 꼽는다. 특히 LNG운반선 등 고난도 선종에서의 압도적 기술 경쟁력이 단가 방어의 핵심이라는 평가다. 올해 1~5월 글로벌 상선 발주 금액은 1,025억달러로 2021년 조선업 호황 사이클이 시작된 이래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와 리스크
증권가에서는 대한조선을 2028년 기준 P/E 7배 수준으로, 국내 조선업종 중 가장 저평가된 종목으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9년까지 건조 물량을 확보한 상황에서 수주잔고 확대가 실적 성장으로 연결돼 밸류에이션 할인이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 미-이란 협상이 타결되어 호르무즈가 재개통되면 운임이 급락하고 신조 발주 수요도 일부 꺾일 수 있다. 또한 중국산 후판 가격 상승, 원달러 환율 하락은 수익성을 갉아먹는 변수로 꾸준히 거론된다.
- 긍정 요인: 지정학 리스크로 인한 우회 항로 확대 → 유조선 수요 지속
- 긍정 요인: LNG선 발주 재개 → 2029년 슬롯 쟁탈전으로 선가 추가 상승 기대
- 리스크: 미-이란 휴전·종전 시 수요 모멘텀 약화 가능성
- 리스크: 환율·후판 가격 변동에 따른 마진 압박
- 리스크: 캐나다 잠수함 사업(CPSP, 60조원 규모) 단일 사업자 선정 불확실성
지금 유조선이 뜨는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하면
전쟁은 공급망을 뒤흔들고, 뒤흔들린 공급망은 선박 수요를 만들어낸다. 한국 조선업은 그 수요를 오직 기술력으로 받아낼 수 있는 세계 유일한 국가 중 하나다. 10조원 베팅이 통했다는 해외의 반응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시장 구도를 인정한 것에 가깝다. 다음 번 슬롯을 선점하려는 글로벌 선사들의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 조선업의 협상 카드는 더욱 두터워진다.
참고 자료
- 대한조선,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2척 수주…2520억원 규모 – 아시아경제
- 대한조선,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6척 수주…”3년 치 일감 확보” – 헤럴드경제
- [모닝 리포트] “대한조선, 수에즈막스 호황 지속…P/E 7배 저평가 구간” – 뉴스핌
- “조선 수주 아직 피크 아니다…가스선 발주 재개로 2026년 수주 더 늘 것” – 이데일리
- 한국 유조선, 열 번째 홍해 통과…원유 수송 – 한국해외문화홍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