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10% 떼먹는 관행 드디어 끝난다” — 공정위·중견 건설사 상생협약, 달라지는 것 총정리
아파트 한 동을 올리는 데 수십 개 협력업체가 붙는다. 그런데 공사가 다 끝나도 대금의 10%는 ‘나중에 준다’며 묶어두는 게 건설 현장의 오랜 관행이었다. 하도급 업체들은 이 돈을 받으려면 길게는 수년을 기다리거나 소송전을 벌여야 했다. 2026년 7월 2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중견 건설사 30곳과 상생협약을 체결하면서 이 고질적인 구조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댔다. 달라지는 내용이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왜 지금, 왜 중견 건설사인가
공정거래위원회는 2026년 7월 24일 서울 전문건설회관에서 시공능력평가 21~50위 중견 건설사 30곳, 대한전문건설협회와 함께 ‘건설산업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식’을 개최했다. 5월에 대형 건설사 20곳과 먼저 손을 잡은 데 이어, 이번엔 중견 건설사까지 포함해 상위 50개사가 모두 협약 테이블에 올라온 것이다.
이들 건설사의 하도급 거래는 2025년 기준 약 1만 2000건, 32조 2000억 원 규모로, 전체 하도급 거래 건수의 약 20%, 거래액의 약 60%를 차지한다. 국내 건설 하도급 시장의 절반 이상이 이번 협약 범위 안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숫자보다 중요한 건 왜 지금 중견사인가 하는 맥락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대금 미지급, 유보금 및 부당특약 설정, 하자 소송 제기 시 책임 전가 등 불공정 관행이 지속돼 왔고, 공정위는 하도급법 집행으로 제재를 이어왔지만 현장에서 관행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협약의 핵심 3가지
① 유보금 관행 완전 폐지
유보금은 원사업자가 공사 기성금의 90% 안팎만 하도급 업체에 지급하고 나머지는 준공 이후로 미루는 관행이다. 하도급 업체들은 이 탓에 노무비 지급이나 원자재 구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조사에서 전문건설업체의 44%가 유보금 설정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협약 참여 건설사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하도급대금을 법정기한인 60일 이내 현금으로 지급하고, 일체의 유보금을 두지 않기로 했다. 단순히 ‘노력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협약서에 명문화된 의무다.
② 부당특약 자체 점검 후 삭제
산업안전비용과 폐기물 처리비용 등을 하도급 업체에 떠넘기는 부당특약도 정비한다. 건설사들은 계약서와 첨부서류를 자체 점검해 부당 조항을 삭제하고, 입찰 과정에서 수급사업자가 제출한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원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계약서 한 줄로 협력업체에 떠밀던 관행이 계약서 단계에서부터 막히는 것이다.
③ 하자소송 책임 분담 — 이번 협약의 신규 내용
지난 5월 상위 20위 대형 건설사와 체결한 상생협약에는 없었던 조치가 이번 협약에 새롭게 포함됐다. 바로 하자 소송 관련 조항이다. 중소·중견 건설사의 경우 하자소송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를 하도급사에 알리지 않은 채 패소한 뒤 책임을 하도급사에 떠넘기는 잘못된 관행이 일부 존재했다. 앞으로는 원청이 하자소송 사실을 하도급사에 즉시 통지해야 하고, 소송 결과에 따른 손해배상액도 책임 소재에 맞게 나눠야 한다.
협약이 실제로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협약 체결 자체로 현장이 바뀌는 건 아니다. 건설사들이 실제로 이행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의식한 듯, 공정위와 전문건설협회, 건설사들은 올해 하반기 중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협약 이행 상황과 하도급법 집행을 점검할 계획이다. 민관협의체가 정기적으로 이행 여부를 들여다본다는 점은 단순 선언과는 차별화된 안전장치다.
이번 흐름이 의미 있는 이유는 방식의 전환에 있다. 그동안 공정위는 불공정 거래가 적발되면 과징금을 때리는 사후 제재 방식으로 시장을 관리해 왔다. 그러나 단속만으로는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 협약 방식은 건설사가 스스로 계약서를 점검하고 관행을 바꿀 유인을 만든다는 점에서, 제재보다 시장 문화 자체를 뜯어고치려는 시도로 읽힌다.
하도급 업체라면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것
- 현재 진행 중인 공사 계약서에 유보금 특약 조항이 있는지 점검하라. 협약 참여 건설사라면 이 조항 삭제를 요구할 근거가 생겼다.
- 하도급대금 지급기일이 계약서에 60일 이내로 명시돼 있는지 확인하라.
- 산업안전비나 폐기물 처리비 등 본래 원청 부담 비용을 떠넘기는 조항은 계약서 체결 전에 삭제 협의를 요구할 수 있다.
- 원청이 하자소송을 진행 중인데 통지가 없다면, 이번 협약 참여사인지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공정위 신고창구에 알릴 수 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 협약 내용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실제 계약 협상력에서 차이를 만든다. 상대방이 어떤 의무를 졌는지 알아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참고 자료
- 공정위, 중견건설사 30곳과 상생협약…유보금 폐지·하자소송 책임분담 — 뉴스핌
- 중견 건설사 30곳, 하자 소송 책임도 분담…유보금 폐지 상생 협약 — 헤럴드경제
- 공정위·전문건설협회·종합건설업계, 하도급 불공정 관행 근절 상생협약 — 파이낸셜뉴스
- 전문건설업계·종합건설사·공정위, 하도급 불공정 관행 근절 ‘맞손’ — 아시아투데이
- 공정위, 건설업계 상생협력 문화 확산을 위해 30개 중견 건설사 상생협약 체결 — 뉴스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