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광장에서 가슴 치며 오열…이란은 지금 무엇을 다짐하는가
7월 4일, 미국이 독립기념일 250주년 축제를 벌이던 그 날, 테헤란의 이맘호메이니 대모살라 광장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수백만 명의 이란인이 가슴을 치며 오열했고, 붉은 깃발이 물결치는 사이 “미국에 죽음을”, “피의 복수”라는 구호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이 시작된 것이다. 단순한 국가 애도 행사가 아니었다. 이란 정권이 전쟁 이후 흔들린 민심을 하나로 묶으려는 대규모 정치 결집의 장이었다.

126일 만에 치러진 장례, 왜 이렇게 늦어졌나
하메네이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진행되던 가운데 관저에서 표적 공격을 받아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 당초 3월에 장례를 치를 계획이었지만, 전쟁이 이어지면서 미뤄졌고 지난달 미국과 휴전이 성사된 뒤에야 사망 126일 만에 공식 장례 절차가 시작됐다. 126일이라는 숫자 자체가 이란이 얼마나 격렬한 혼돈을 겪었는지를 말해준다.
이란 국영방송은 하메네이와 함께 숨진 가족들의 관 앞에서 애도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생중계했다. 특히 하메네이의 관 옆에는 공습 당시 함께 사망한 생후 14개월 손녀 자라 모하마디 골파이가니의 작은 관이 나란히 놓여 이란인들의 슬픔과 분노를 자극했다. 아이의 작은 관 하나가 그 어떤 연설보다 강한 반미 감정의 불씨가 됐다.
장례가 아니라 ‘결집의 무대’였다
이란 당국도 이번 장례식의 구호를 ‘반드시 일어서리라’로 정하고 국민들의 참석을 격려하고 있다. 장례식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 전쟁으로 혼란해진 민심을 결속하겠다는 의도다. 이 날짜를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란은 이번 국장 구호를 ‘반드시 일어서리라’로 정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 의지를 강조하며 국민 결집에 나섰다. 장례식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시작되는 점도 강한 반미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란의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전부터 광장에는 수많은 시민이 몰렸으며, 일부 조문객들은 복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흔들며 “미국에 죽음을”, “복수”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서 만난 타브리즈 출신의 한 추모객은 “우리의 조국과 종교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테헤란 조문 행사에 최대 2천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빵 5천만 개를 준비하고 모스크 5천여 곳과 학교 700곳을 숙소로 개방하는 한편, 시내 상점도 휴업하도록 했다. 단순 추모가 아닌 국가 총동원에 가까운 규모다.
일주일짜리 장례 로드맵: 테헤란에서 이라크까지
장례 일정은 단순하지 않다. 장례식은 4~5일 테헤란에서 일반 시민 조문으로 시작된다. 이어 6일에는 종교도시 곰, 7일에는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와 바그다드, 나자프에서 추모 행사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9일 고향인 마슈하드의 이맘 레자 성지에서 매장식을 끝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다. 이란 국내를 넘어 이라크 시아파 성지까지 이어지는 이 여정은, 이란이 여전히 ‘시아파 세계’의 맹주임을 자처하는 상징적 선언이기도 하다.
- 7월 4~5일: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모살라 — 일반 시민 조문
- 7월 6일: 종교도시 곰(Qom) — 장례 행렬 및 추모식
- 7월 7일: 이라크 카르발라·나자프 — 시아파 성지 추모 행사
- 7월 9일: 마슈하드 이맘 레자 성지 — 최종 안장
하메네이 이후, 이란은 어디로 가나
더 큰 질문은 장례 이후다. 하메네이가 공식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하면서, 이란 후계 구도는 안갯속에 잠겼다. 가장 유력한 차기 지도자 후보로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거론된다. 그는 혁명수비대(IRGC)와 정보기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세습 통치’에 대한 이란 내부의 거부감과 최근 시위대의 강한 반발이 최대 걸림돌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경파와 혁명수비대는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지지하며 체제의 연속성과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권력의 방향을 이끌었다. 특히 전쟁 상황 속에서 지도자의 정통성보다 체제 결속과 군사적 대응 능력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권력의 균형은 빠르게 강경 진영으로 기울었다. 결국 ‘세습’이라는 금기를 이란 스스로 깬 셈이다.
그러나 이란 내부의 균열은 여전하다. 불과 반년 전, 테헤란 거리에서 “샤 만세”를 외치며 정권 타도를 요구하던 시위대 수만 명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슬람 법학자인 울라마와 혁명수비대를 축으로 한 강경파 지배연합은 이미 2025년 6월 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의 참담한 패배와 자국민 보호 실패로 시아파 맹주로서의 위상과 체제 정당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오늘의 ‘피의 복수’ 함성이 그 균열을 덮을 수 있을지, 아니면 더 깊은 내홍으로 이어질지가 진짜 관전 포인트다.
광장을 메운 수백만 명의 오열이 진짜 분노인지, 체제가 연출한 슬픔인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메네이 없는 이란이 어떤 모습으로 재편될지, 그 답이 이 장례식 이후 수개월 안에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다.
참고 자료
- “미국에 죽음을” 외친 추모 인파…이란, 하메네이 장례 돌입 — EBN뉴스
- 이란 하메네이 대규모 장례식 시작… 미 독립기념일 맞춰 결집 시도 — 한국일보
- 이란, 하메네이 시신 안치 관 공개…함께 숨진 14개월 손녀도 — 파이낸셜뉴스
- 이란, 하메네이 대규모 장례… 미 독립기념일에 개시 — 오마이뉴스
- 2026년 이란 반체제 시위 이후 이슬람 공화국의 향방 — 아산정책연구원